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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简 歸藏의 해석 / 首卦인 寡(坤)卦 부분

정명원 2019. 2. 2. 20:54

*이하 붉은 글자는 귀장역의 원문이고 푸른글자는 이를 현대에 풀은 글로서 물론 학자에 따라 해석이 다를수 있고 본인도 여기서 판단에 따라 교석하되 아직 불분명한 부분은 문구를 띄우지 않는다

1、寡曰不仁昔者夏后启是以登天啻弗良而投之渊寅共工队□江□

(일차 校釋文) 寡曰不仁。昔者,夏后启是以登天,帝不良而投之渊寅共工坠□江□……

訓譯 : 寡를 不仁이라 말한다 옛날에 하나라의 군주 하후계가 이로 하늘에 올라 帝는 불량히해 淵(渊寅

)에 던지고 공공씨...

(이 죽간의 머리에는 곤괘가 그어져있다함 이는 즉 곤괘임)

 

《归藏》全解의 朱興國의 설 , 괘명은 쓰지 않았다 전하는 귀장본은 이 괘명을(?)로 하였는데 필자는 당연히 이는 輿자가 생략된 것으로 인식하며 古文의 坤이 아니다

坤은 輿가 된다 <주역 설괘와 사괘 육삼 효사, 박괘 구삼 효사를 보라> 그래서 괘가 이름이 가히 輿가 된다 박괘의 상구가 변하면 곤괘가 되는데 상사에 이르기를 군자는 輿(수레)를 얻으니 民의 수레에 실어 모시는바이다 坤은 衆이 된다 했고<설괘전> 곤은 백성이 된다 했다<秦簡 귀장 介> 백성은 오히려 군주의 수레가 되기에 군자는 수레를 얻으니 백성의 싣는 바다 한 것이다

 

寡자는 蔡運章 선생의 해석에 따르면, 감안하매 寡자는 이 괘의 괘명으로는 불가능하다 坤은 衆이 되고 坤은 인민이 된다 곤괘는 寡의 뜻이 없다 寡曰不仁이라는 이말은 제왕을 경계해 고하는 말이다 논어 안연 편에 인자는 愛人이라 했고 예기 애공문 편에는 엣날의 정치는 애인을 크게 여긴다 하였으니 군주가 不仁하면 군중을 잃고 孤家의 寡人을 이루기에 곤괘에는 경계해 말하길 寡를 不仁이라 말한다 한 것이다 이로 인군이 애인할 것을 권한 것이다 주역 비괘는 또한 乾이 왕하고 곤이 폐하여 군주가 백성을 잃어 불인함이다

 

는 帝로 읽는다 곤은 입추를 주관한다<역위.통괘험> 

夏의 后(後)요 秋의 시작(启)에 해당되는 계절이기에 夏后라고 말한 것이다

坤은 河가 된다<태괘 九二>

(按 ,이하 뒷란의 본인 按語에서 말하는, 어머니 배를 열고 나와서 라 한다는 것과 또 달리 억지로 글자 맞추기 하는데 가까운 무리인가 한다 그렇다면 입추에 태어났다는 것도 되지만 하나라는 그 군주를 보통 后라 칭한 것인데 그럼 어디 하나라 제왕(夏后)이 다 夏後로서 말하고 혹은 그 입추무렵 태어 났다는 말일까?

또 水(川)는 坎卦감괘이지 곤이 아니다 오직 하나 팔괘(小成卦)로서의 곤괘와 건괘가 겹친 대성괘 로서의 태괘  의 九二 효사의 憑河(빙하, 河를 맨발로 건넌다)라는 말이 있음을 들고 있지만 그나마 이게 곤이 물이라는 것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 또 태괘는 곤만이 아니고 건괘와 이루어진 것인데 물이 말랐기에 걸어 건널수 있었을 것인 만큼 오히려 이 九二 부분은 양효로 이루어진 마른 乾에 속한다)

 

자는 료명춘선생의 해석에 따른다 "료명춘의 <오행대의,논지간명>에서, 寅은 移다"

산해경에,"축융이 江水에 降處하여 공공을 낳고 공공이 술기를 낳고 술기는 머리가 모난 이마로서 이가 토양을 회복하여 江水에 처했다(是復土壤 以處江水) 공공이 후토를 낳고 후토가 애명을 낳고 애명이 十二月을 낳았다"

국어 노어에, "공공씨가 구주에 맏이 노릇할때 그 아들을 후토라 하는데 능히 구주의 땅을 平히 하는고로 제사해 社를 하였다"

따라서 산해경의 以處江水에 따라 원문의 빠진 구절 投之渊寅共工队□江□ 投之渊 移共工<以><處>江<水>로 해야 한다

 

訓民按 , 본인은 寡를 그대로 괘명으로 인식함은 물론 원문에 寡를 不仁이라 말한다는 것은 이하 다른 괘의 투를 보더라도 寡가 이 항목의 괘명임은 물론 마왕퇴백서에 乾이 鍵으로 표기되고 象이 馬로 표기된 것과 같이 寡가 단지 괘명의 음차나 오기가 아닌 그대로의 뜻을 가지고 지금 주역의 坤을 말함이 틀림없다

이런 古文에 원래 처음의 뜻이 그러했거나 통하는 글자나 음을 빌려 옮겨쓴 음차자는 물론 오기까지 흔히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寡과 단지 음을 빌려 표기한 음차가 아닌 지금의 坤으로 보고 이에 따라 곤을 不仁이라 말한다는 뜻으로 새긴다면 언듯 와 닿지는 않을같다 그래서 주흥국은 채운장의 설을 따라 위와 같이 여기서의 이 항목의 괘명은 없다 여기고 옥함산방일서에서와 같이 달리 전하는 귀장본의 (?)를 輿로 푸는 설을 낸 것이다

그러나 역 계사전에 典常이 이미 있다 하는 한편 역의 道됨은 典常의 要한 것으로 하지는 않고 꼭 그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행해지지는 않는 것으로서 오직 變에 適하는 바라 하였는 바 역의 포괄적 의미중에 그렇게 따로 가리켜 말하는 의미를 찾을 수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興仁의 상징이 되는 동방 목덕의 진괘(震 )는 오행에서 중심의 상징이 되는 곤의 토덕이 두려워 하는 바이고 한편 토덕은 무더위에 큰비를 받는 늦여름에 제일 성하여 더위와 추위 사이 사계절에 있어 중간이 되는 입추무렵에 배정되고 역시 주역 설괘전의 남방 리괘 다음의, 곤에서 사역한다하여 아래 문왕팔괘도에서 보듯이 곤은 서남방에 배정된다

그러나 양이 하나 처음 생기는 동짓달의 復卦가 역의 달력에서 1월이 되고 이어 음이 처음 하나 생기는 구괘는 7월이 되어 곤괘는 초목의 씨가 땅을 열고 싹 내는 봄이 아닌 초목의 잎이 다 떨어지는 12월의  (대략 음력으로 10월 양력의 11월에 해당) 괘가 되는 것으로 송나라때의 근사록에 말하기를 실제 양이 다 소멸되고 없는 음력 10월을 陽月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양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고의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인데 물론 그렇다고 역시 순수한 양으로 이루어진 건괘의 음력 4월은 음월이라고 부르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역 괘도의 일년 열두달에서 놓고 보면 위의 문왕팔괘도에서 보는대로 北의 坎卦로 동짓달의 1월로 시작해서 시계방향으로 열두달을 가면 오후 다섯시 침의 서북-북 방향이며 실제 지금 통행하는 주역의 곤괘의 서리를 밟아 얼음에 이른다로 시작하는 효사나 이에따라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일이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연고가 아니다 등의 곤괘 문언전의 말투를 보면 여섯개 전부 양효로 이루어진 건괘의 효사와 달리 거의 이에 간접 부합할만한 그런 말투로 되어 있다

또 仁은 살리는 것인데 남편이 죽어 아이를 생산할수없는 부네를 과부라함은 잘 알려져 있으니 이런점을 두고 말한것이라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님을 넘어 가리키는 바가 있다 

즉 1에서 10까지에서 가운데 토덕을 나타내는 숫자는 5와 6인데 여기서 5는 양성적 긍정의 의미가 되고 역시 그 중간에서 짝이 되는 음수 6은 음성적 의미이니 6에서와 같이 토덕 곤의 음성적 측면에서 말하는 것으로 볼수 있고 무었보다 곤괘 자체가 이미 건괘에 반하는 대표적 음성괘로서 양이 하나씩 없어져 여섯개 모두 음을 이룬 괘이다

또 땅을 맡은 신을 后土라고 하며 夏나라는 경문의 하후계 처럼 그 군주를 后라 일컬었는데 그 토덕으로 말한 것으로서 이후로도 군주는 스스로 토덕을 나타내는 누런옷을 입고 孤 또는 과인이라 자칭해 왔으니 따로 천자, 황제로서 짐이란 것은 진시황 이후의 일이며 과인은 곧 부덕한 사람이란 뜻의 군주가 자신을 겸칭한 말이다

歸藏易이 곤괘를 首卦로 내세운 것과 주역 설괘전 또한 坤은 이로 藏한다 하는 말이 있는데 무었보다 寡자가 처음 나오는 것으로 주역 계사전에 吉人의 辭는 寡하다 하였는 바 寡는 집을 뜻하는 宀 면과 나누어 주는 뜻의 頒반으로 되어있으니 寡의 적다는 뜻은 이런 나누어주는 것은 적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볼수 있는데 또 주역 설괘전에 곤은 인색이 된다 하였다

 

,하후계는 보통 夏启하계라고 하며 우임금의 아들로서 사기에는 우임금을 이어 물려 받은 군주 백익에게 선양 받고 불복하는 有扈氏유호씨를 복속하여 이로 처음 하나라 세습왕조를 이룬 인물로 전하는데 단 진나라때 출토된 급군총서의 죽서기년에는 계의 즉위 6년 정권쟁탈에 진 백익이 피살되었다 한다 계는 왕위에 오른 9년에 황음무도하여 병사했다 하고 역시 전설에 그를 낳고 어머니는 죽었다 하였는 바 이에서 그 이름 启(啓)라는 것도 아이가 어머니 뱃속을 열고 나왔다는 뜻의 지금 의학적으로 볼때 어머니가 출산중에 죽어 아이라도 건지기 위해 배를 열어 낸 그런데서 뜻한 이름으로 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하후계의 이름 启에 결부된 이런 출생의 설은 초목의 싹이 땅을 열고 나오는 같은 출산에서 땅을 너무 해친 경우의 비유로서 말함일 것인데 이로본다면 자원상으로 갑골문을 보면 启는 왼쪽 부수에 손(又)이 있고 오른변에 戶가 있어 손으로 戶를 여는 뜻인데 후에 口가 더해지고 손이 생략되기도 하여 启 또는 啓가 되었으니 启는 입으로 말해 열고 啓는 손과 입을 다 포함하는 것이며 태아가 스스로 헤집고 나온 것이 아니라면 옛 산부인과에 칼로 개복까지는 모르겠지만 부득이 손으로 음호에 무리하게 했음이라 할수도 있겠는데 좌전에도 춘추시대 정나라 무공의 아들 장공은 출산에 오생寤生하여 어머니 강씨를 놀라게 했기에 寤生오생이라 이름하고 드디어 어머니가 싫어 했다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寤生은 임산부가 수면중에 아이를 낳아 깨어 보니 알았다는 설과 영아가 분만시에 바로 눈뜨고 보는 것이라는 설과 보통 분만에서 꺼꾸로 나올때의 난산을 말하는 설이 있다

한편 지금도 여군주를 내세우는 경우 아무래도 전제독재보다는 다수의 공화성이 더 경향하기 마련이듯 启라는 이름 또한 모계적 공화사회에서 부계 세습왕조를 처음 열은데서 생긴 가능성으로 보이며 또 귀장역이 땅과 어머니를 상장하는 寡(坤)괘를 首卦로 내세우면서 그 출생에서 어머니를 해친 인물로 보이면서 겸칭이 아닌 실제의 과인으로서의 하후계에 대한 비평의 인용하는 점사가 있음은 특히 그 괘의 상징성과 더불어 깊은 전고적 연관의 암시성을 품고있다 


 

按 , 한편 전자에 마왕퇴백서의 한나라때 쓰인 역경을 볼때 연산괘가 산을 뜻하는 간괘(艮 )가 首卦로 되어 있다는 기록처럼 백서에서는 간괘가 수괘로 배열 된 것을 보고 이는 秦나라떄는 법가가 주권하면서 법을 상징하고 그 괘에서 주된 양효의 위치가 신분상 가장 높은 天位가 되는 간괘를 수괘로 내세운 것인가 여겼다

제주도 방언에 머슴을 맏이라 했다는 것을 들은 듯한데 예로 맏아들의 상징인 진괘 (震 )는 괘에서 그 주를 이루는 양효가 제일 밑에 있어 한편 종복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